분류: 학술대회
일시: 2025-06-13
장소: 한국외국어대학교
2025년 5월 유네스코 자카르타 사무소와 국제기록유산센터의 공동주최로 '갈등 해결과 평화 구축을 위한 세계의 기억'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본 논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프로그램을 개별 국가의 역사적 서사에 갇혀 있던 기억들이 국제적 공론장으로 이동하는 '기억의 국제화' 관점에서 조명합니다. 세계기록유산은 과거 기록을 보존하는 제도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경쟁하는 다양한 집단적 기억들이 국제적 가시성을 얻고 민주주의·인권·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의 언어로 재해석되는 소통의 플랫폼으로 기능합니다. 이를 통해 역사적 기억이 국가의 맥락을 넘어 국제사회의 규범적 번역 과정을 거치며 민주적 학습과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됩니다.
이 논문은 동아시아의 상이한 역사적 경험을 담은 세 가지 사례를 질적으로 비교 분석하여 기억의 국제화가 지닌 다채로운 양상을 보여줍니다. 첫째, 일본 식민주의와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억은 초국가적 시민사회의 연대로 보편적 여성 인권의 서사로 재구성되었으나, 국가 간 정치적 대립과 중단 사태 등 갈등이 증폭되는 경로를 보였습니다. 둘째, 동티모르의 독립 투쟁 기록은 적극적인 기록화와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정의(justice)를 인정받은 반면, 인도네시아의 침묵이 대비되며 구조적 비대칭 속 소통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셋째, 필리핀 방사모로 평화협정 사례는 과거의 폭력을 증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쟁 해결과 평화 구축 프로세스 자체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보존·공유하려는 미래지향적 협력 경로를 제시합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기억의 국제화가 단순한 역사적 합의나 선형적인 화해로 귀결되지 않고, 갈등·침묵·협력이라는 복합적인 소통 양식으로 전개됨을 입증합니다. 세계기록유산 프로그램은 역사적 진실을 최종 확정하거나 분쟁을 즉각 해결하는 권위적 수단은 아니지만, 상이한 기억들을 국제적 공론장에 노출시키고 장기적인 대화와 성찰의 조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동아시아의 복잡한 역사 갈등 속에서 기록유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지속 가능한 평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비판적 논의의 장은 계속될 필요가 있습니다.